대표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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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해초맥반석이라는 이름을 걸고 100%국내산 돌이라는 명예를 걸고...

    효자돌침대를 찾아주신 고객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997년 집을 리모델링하기 전까지 저의 시골집은 구들장이 깔린 온돌방이 있었습니다. 자식들의 방은 모두 연탄 보일러를 깐 방이였지만 부모님께서 쓰셨던 안방만큼은 온돌방이었습니다. 국내 최대의 구들장 산지였던 보성 득량에서 30여년동안 구들장(보성방돌)을 캐셨던 저의 아버님께선 누구보다 구들장(보성방돌)에 대한 애착이 많으셨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던 아버님께선 새벽 4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보성 득량의 오봉산을 돌며 구들장을 캐셨습니다. 그 때 당시 오봉산일대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부업 또는 생업으로 구들장을 캐며 살아 갔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뛰어났던 구들장이었기에 운송수단이 부족했던 60-70년대에도 기차로 트럭으로 구들장은 전국으로 판매되었습니다.

    서울, 대구, 광주,여수등 보성방돌은 그렇게 나갔으며 도회지 사람들의 겨울철 건강을 책임졌습니다. 어린 동생들과 함께 부지런하고 착실하다는 평판으로 돈을 모아 조그만 산을 사셨습니다. 아버님께선 연탄보일러에 밀려 수요가 사라질 때까지 그 마지막까지 구들장석산을 지키셨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다며 이제는 과거처럼 구들장을 사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아버님께선 꿋꿋히 석산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자식들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의 뒤로 남아 있었던 것은 많은 빚이었습니다. 그대로 석산을 폐광하면 석산은 경매로 넘어 가게 되어있는 상황에서 도회지로 나가 살아가던 저희 형제들은 아버님의 석산만큼은 지키자는 마음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보성방돌이 아닌 보성해초맥반석이라는 이름을 걸고 100%국내산 돌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 중국산 저가 대리석들의 물량 공세에 눌려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저희는 꿋꿋히 아버님의 석산을 이어 가려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난방문화를 가진 반만년 한민족의 온돌문화를 이제는 저희 효자돌침대에서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좋은 서비스를 통해 고객 여러분들께 다가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추운 겨울 검게 그을린 아랫목에 작은 이불로 덮여있던 외출하신 아버님의 밥공기가 생각나는 그런 효자돌침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저희 효자돌침대를 찾아 주신 고객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